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라 부르지 않는 이유에 대한 조직신학적 고찰
개신교 신학, 특히 조직신학 전통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호칭하는 것은 단순한 전통이나 언어 습관이 아니라, 성경적 계시와 삼위일체 교리,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적 관계에 기초한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남성이 아닙니다. 신은 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라 부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글에서는 왜 개신교 전통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되, '어머니'로 부르지 않는지를 조직신학적 틀 속에서 설명하고, 최근 제기되는 성(性)적 언어에 대한 신학적 논의와의 비교도 함께 다루고자 합니다.
하나님 호칭의 성경적 기초
성경은 하나님을 일관되게 '아버지'로 계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로 시작되며, 바울도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성령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호칭은 단순한 문화적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설명하는 언약적 언어입니다.
성경 속 여성적 비유의 존재
물론 성경 안에는 하나님을 여성적 이미지로 묘사하는 비유들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66장 13절에서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라"고 하며, 마태복음 23장 37절에서는 예수께서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예루살렘을 모으려 하셨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을 문자 그대로 여성이나 어머니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성품의 부드러움과 보호하심을 설명하기 위한 시적 비유입니다.
삼위일체와 위격 간 명칭의 일관성
조직신학에서 삼위일체 교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을 구별하되 본질은 동일하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성부'(Father)라는 호칭은 성자의 영원한 발생과 관련되어 위격적 구별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성자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시며'(요 1:14, 18),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하시는 분으로 이해됩니다.
위격 간 관계를 표현하는 신적 언어
'아버지'라는 호칭은 하나님이 남성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언약적 언어입니다. 이는 시간적 순서나 신적 본질의 우열이 아니라, 존재론적 질서(order of being, taxis)를 표현하는 것으로, 삼위 간의 구별을 명확히 하는 신학적 수단입니다. 따라서 '어머니'라는 호칭은 삼위 간 위격적 관계의 구조를 신학적으로 혼란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성(性)의 문제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성(性)을 가지신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요 4:24), 어떤 피조물과도 동일시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그분' 혹은 '그녀'로 한정 짓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로 자신을 나타내셨고, 그 대표적인 호칭이 '아버지'였습니다.
인간 창조와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 남성과 여성의 특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인간 전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생물학적 성별과 동일시되지는 않으며, 하나님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구속사적 계시와 하나님 아버지의 명칭
성경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계시하실 때, 단지 권위적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언약적 사랑과 인도, 보호의 의미를 담아 사용하십니다. 특히 신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근거하며, 성도들이 그 안에 연합함으로써 하나님을 동일하게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요 20:17).
신자의 양자됨과 '아바 아버지'
로마서 8장 15절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성도 간의 관계를 가장 친밀한 가족관계로 표현한 것으로, 이 호칭은 신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특권적 언어입니다. 이 구절은 성령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도록 역사하신다는 신비로운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여성신 이미지에 대한 현대적 논의와 조직신학적 검토
현대 신학, 특히 페미니즘 신학에서는 하나님을 어머니로 호칭하거나 여성적 신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 남성 중심의 하나님 이미지가 성경 해석과 교회 구조에서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모성적 속성을 부각시키려 합니다.
조직신학의 비판적 응답
개신교 조직신학은 이러한 시도를 일정 부분 이해하면서도, 신적 계시의 질서와 성경의 명확한 호칭을 따르는 데 우선순위를 둡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성경 전체에서 남성적 권위나 여성적 보호 모두를 포함하지만,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아버지'를 선택하셨다는 점은 단순한 사회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삼위일체적 위격의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언약신학의 관점
언약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주권적이며 인격적인 언약 관계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아버지로 계시되며, 이는 인간의 가정 질서를 반영하여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선택하신 계시의 형태입니다.
결론
개신교 조직신학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전통이나 남성 중심의 사고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격 간 관계를 바르게 드러내는 언어이며, 성경적 계시에 근거한 신학적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시며, 성을 초월하신 분이시지만, 성경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아버지'라는 호칭을 통해 가장 분명히 표현하십니다.
현대 문화의 흐름 속에서 신적 호칭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일어나지만, 개신교 신학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신자와의 인격적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아버지'라는 호칭을 계속 사용합니다. 이는 교리적 엄밀성뿐 아니라, 신자들의 영적 정체성과 확신을 세우는 데 있어서도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단지 익숙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질서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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