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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해

누가복음 5장 주요 주제와 해설 묵상

by πάροικος 2025.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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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앞에 엎드린 자, 하나님의 은혜를 입다

누가복음 5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죄인을 용납하시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지 몇 가지 기적이 기록된 장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분의 부르심 앞에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응답해야 하는지를 깊이 보여주는 복음의 정수입니다.

깊은 데로 가라, 은혜의 부르심 앞에 엎드리다

누가복음 5장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무리가 몰려오자 예수님은 시몬의 배를 빌려 조금 물러 앉으시고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 후에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하십니다. 여기서 '깊은 데로'라는 말은 헬라어 "바토스"(βαθύς)로, 단지 물리적 깊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종의 영역을 상징합니다.

시몬은 밤새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라고 대답합니다. 헬라어 '에피 토 레마'(ἐπὶ τῷ ῥήματι)는 말씀이라는 '근거 위에' 그물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즉, 경험이나 이성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행동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임을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그 결과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장면은 그 다음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합니다. 풍성한 기적 앞에서의 반응이 감격이나 흥분이 아니라 죄인의 고백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죄성을 깨닫게 만드는 본질적 힘을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사람을 취한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조그레오"(ζωγρέω), 원래는 살아 있는 채로 잡는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죽음을 향해 가던 사람들을 생명의 자리로 붙들어낸다는 구원의 사명을 의미합니다. 시몬과 동료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릅니다. 이 장면은 단지 제자의 부르심이 아니라, 구속사의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병든 자에게 다가가신 주님의 손길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나병 환자와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나병은 단지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의 분리, 율법적으로는 부정함을 상징하는 병이었습니다. 나병 환자가 예수께 와서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눅 5:12)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시며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십니다.

여기서 '손을 내밀다'는 헬라어 "엑테이노"(ἐκτείνω)는 의도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부정한 자를 만진다는 것은 율법적으로는 오히려 예수님이 부정해지는 행위였지만, 예수님의 거룩은 오히려 병든 자를 정결케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율법의 규정을 초월하여, 새로운 정결함을 주시는 참된 제사장이심을 드러냅니다.

중풍병자의 이야기도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침상에 누인 채로 그를 데리고 와서 예수 앞에 내려놓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눅 5:20)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병 고침보다 더 중요한 죄 사함의 권세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속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눅 5:24).

'인자'(헬라어 '호 휘오스 투 안트로푸')는 단지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니엘 7장에 등장하는 하늘로부터 권세를 받은 자로서의 메시아적 칭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죄를 사하고 새 생명을 주시는 구속의 주님이심을 밝히 드러내십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복음의 본질

누가복음 5장의 마지막 부분은 세리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눅 5:27)고 말씀하십니다.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는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열고, 많은 세리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예수님과 앉아 식사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를 보고 비난하며,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누가복음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32). 이는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이 단지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죄인의 구원에 있음을 명확히 밝히는 선언입니다.

또한 금식에 대한 논쟁에서 예수님은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들을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눅 5:34)라고 반문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임재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며, 옛 방식(율법)과 새 방식(복음)은 함께 어울릴 수 없음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이는 단지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본질적 전환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결론

누가복음 5장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금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는 죄인을 부르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말씀으로 새 생명을 주시는 참된 메시아이십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분은 조건을 따지지 않으셨고, 죄인을 용납하실 때 그들의 과거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그 음성 앞에 시몬처럼 엎드릴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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