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살아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누가복음 17장은 제자 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실족하게 하지 말라 하시는 경고, 믿음의 능력, 감사의 회복, 종말에 대한 경계 등은 단절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정결하고 깨어 있어야 할 제자의 삶을 일관되게 가르쳐주는 내용입니다.
실족하지 말고 용서하라: 공동체를 향한 책임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도다”(눅 17:1)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실족하게 하다’는 헬라어 ‘스칸달리조’(σκανδαλίζω)로, 원래는 덫을 뜻하는 말이며, 영적으로는 타인을 죄에 빠지게 하거나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공동체의 한 사람을 넘어뜨리는 심각한 책임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실족하게 하는 것보다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눅 17:2)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의 믿음을 해치거나 어린 자들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엄중하게 다루시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님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죄를 범했을 때의 태도를 가르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내게 돌아와 회개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3-4). 여기서 ‘용서하라’는 헬라어 ‘아피에미’(ἀφίημι)는 ‘풀어주다, 놓아주다’는 뜻으로, 단순히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죄의 책임에서 해방시켜 주는 행동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 공동체가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실수와 갈등이 있을 수 있음을 아시고, 그러나 그 안에서 반드시 회개와 용서가 반복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실제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겨자씨 믿음과 종의 자세
이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예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고 하십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믿음의 ‘양’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생명력이 강하며, 믿음 역시 작아 보여도 그 본질이 하나님의 능력에 기대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믿음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기대어 반응하는 신뢰의 자세입니다.
이어지는 종의 비유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의 기본 태도를 설명합니다. 밭을 갈거나 양을 치고 돌아온 종이 주인에게 “수고했다”고 칭찬을 받을 자격이 없듯, 제자는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눅 17:10).
헬라어 ‘무익한’(ἀχρεῖος)이라는 단어는 ‘자격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은혜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도 그것이 우리의 공로가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임을 고백하는 겸손한 자세를 말합니다. 믿음의 행위는 의무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열 나병 환자와 한 감사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나병 환자를 만나십니다. 그들은 멀리 서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7:13)라고 소리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눅 17:14)고 하십니다. 이는 레위기 13~14장의 규례에 따른 정결 의식을 이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가는 도중에 모두 나음을 입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중 단 한 사람, 사마리아인 한 명만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표합니다.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라고 물으시고, 감사한 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구원하다’는 ‘소조’(σῴζω)는 단지 육체적 치유를 넘어 전인적 구원, 즉 영적 회복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까지를 포함합니다. 열 명 모두 병은 나았지만, 하나님 앞에 반응한 자는 단 한 명이었고, 그 한 사람은 영혼까지도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됨을 드러내는 열매입니다. 감사 없는 믿음은 자기중심적이고 기적의 수혜에만 머무릅니다. 반면 감사는 믿음의 진정성을 증명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참된 경배의 표현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종말의 징조
마지막 부분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너희 안에’라는 말은 ‘너희 가운데’(ἐντὸς ὑμῶν)로, 공동체 안에 임하신 메시아 자신, 곧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어 제자들에게 장차 있을 종말의 날들을 설명하십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에서 번쩍여 하늘 아래 이쪽에서 저쪽까지 비치는 것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눅 17:24).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분명하고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노아의 때와 같이… 롯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일상에 몰두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지 경고가 아니라, 그날을 대비하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3)는 말씀은 생명에 대한 패러독스를 보여줍니다. 자기를 붙드는 자는 결국 그것을 잃고, 주를 위해 내려놓는 자는 진정한 생명을 얻습니다.
결론
누가복음 17장은 제자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실족하게 하지 않는 정결한 삶, 회개와 용서로 세워지는 공동체,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세, 감사로 반응하는 예배자, 그리고 종말을 준비하는 깨어 있는 제자의 삶. 이 모든 것은 따로 떨어진 윤리적 덕목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의 일관된 표현입니다. 믿음은 단지 마음속 고백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할 실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우리 가운데 임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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